거장 조용필의 20집, 그 가슴 뛰는 서곡


사진제공=YPC, 유니버설뮤직 제공

1980년대를 넘어 한국 대중음악사를 통틀어 조용필이라는 이름은

딱히 이론의 여지가 없을 입지전적, 유일무이한 고유명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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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가수라는 보편적 평가 앞에 굳이 '건국 이후'나 '20세기'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유도 아마 그런 조용필의 남다른 존재감 때문일 텐데,

과연 지난 반세기를 장르의 경계 및 세대적 한계를 도미노처럼 허물어 온 그의 행보는 최초와 최고의 연속이었기에 이는 절대 과장된 평가는 아니다.

영국 소설가 서머싯 몸이 '달과 6펜스'에서 썼던 말("인간은 신화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타고난다")을 조금 바꾸어 보면

그런 조용필은 '타고난 능력으로 신화가 된 인간'이었다. 본인 말을 빌려 그는 "거의 미친 사람처럼 노래에 몰두"해 대중이

자신에게 미치도록 만들었다. 물론 그 대중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조용필의 노래는 그 옛날 "초등학교 교실에서 노인정"까지 울려 퍼졌기 때문이다.


세월은 흘러 2022년 가을의 끝. 이미 칠순을 넘긴 조용필이 19집 이후 9년 만에 스무 번째 작품으로 가는 길(Road)을 여는 서곡(Prelude)을 공개했다.

이번 싱글엔 총 두 곡이 담겼는데 두 곡 모두에 김이나가 시를 주고 19집 때처럼 해외 뮤지션들이 송 캠프 형식으로 곡을 만졌다.

싱글 선공개 방식은 지난 앨범 때도 한 것이지만 이번 20집의 싱글은 그런 일주일 간격의 선공개와 달리, 2023년 상반기 미니 앨범으로

일부 수록곡들을 더 선보인 뒤 그해 하반기에 비로소 완전체 앨범을 만날 수 있도록 짜인 각본의 첫머리여서 조용필에겐 다소 이례적이고

실험적인 앨범 공개 형식으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그건 어쩌면 싱글, 미니 앨범, 완전체 정규 앨범까지 세 차례 '조용필 신곡'들을 글로써

다뤄야 할지 모를 나 같은 사람에게도 이례적인 경험이 되긴 마찬가지일 것 같다.



사진제공=YPC



첫 곡은 '찰나'다. 인트로를 듣는 찰나 가슴이 부풀어 오르는 이 곡에서 조용필은 과거 'Q'에서 불렀던 "너를 용서 않으니 내가 괴로워 안 되겠다" 같은

비련의 성인풍 가사 대신 "재미없기로 소문났었던 내가 썰렁한 말에 실없이 웃고 많이 들뜨네" 같은 편안한 중년풍 노랫말을 부른다.

작업 전 "곡이 재미있으면 좋겠다"라고 말한 조용필의 주문에 김이나가 용기를 내 써낸 '찰나'의 가사는 시종 밝고 역동적인 기운이 풀가동하는

음악을 타고 희망과 환상의 공간으로 청자를 데려간다. 그렇게 사람의 관계와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변화를 노래한 '찰나'의 작곡가는 모두 세 사람.

미국의 프로듀서 겸 작곡가인 다니엘 무칼라는 백스트리트 보이스, 레오나 루이스, 그리고 미국의 전설적인 컨트리 가수 가스 브룩스와 작업한 인물로

그는 내친김에 '찰나'의 프로덕션까지 맡아 트랙에서 자신의 비중을 높였다.



에릭 클랩튼의 'I've Got A Rock N' Roll Heart'로 싱어송라이터 활동을 시작해 페이스 힐의 'Let Me Let Go',

마일리 사이러스의 'I Learned From You'를 만든 스티브 다이아몬드는 마이클 잭슨과 생전 마지막 투어 리허설을

함께 한 기타리스트 오리안시의 'According To You'를 만든 이력도 있는데 특히 오리안시의 곡은 '찰나'의 전체 무드를 이끄는

펑크(Punk) 기타 리프와 구성에 많은 영감을 준 듯 들린다. 나머지 한 명은 앤디 러브라는 사람인데 국내 아이돌 그룹 팬이라면

레드벨벳과 투모로우바이투게더, 몬스타엑스, 슈퍼주니어의 곡들에서 한 번쯤은 확인했을 이름이다(앤디는 보컬로 조용필을 따로 돕는다).

이 세 사람의 아이디어에 기타와 베이스 연주를 입힌 사람은 아담 레스터. 그는 세계적인 록 뮤지션 피터 프램튼과 투어를 함께 돈 실력파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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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시간 한(恨)과 혼(魂)으로 대변됐던 조용필의 가창은 이 모든 음악적 조건을 업고 에코 등 이펙터를 먹인 입체적 화음과 구호에 가까운

허밍의 반복으로 곡을 우주의 차원으로 이끈다. 특히 프리 코러스("반짝이는 너 흐트러진 나 환상적인 흐름이야")에서 테크놀로지에

기댄 효과(Telephone Effect)로 자신의 창법을 통제하는 모습에선 판소리를 배워 허스키 보이스를 얻어낸 과거 아날로그 훈련과는

다른 조용필만의 디지털식 접근을 엿볼 수 있어 흥미롭다.



동아프리카 탄자니아에 있는 대평원을 바라본 두 번째 곡 '세렝게티처럼'은 "우는 것 밖엔 몰랐던" 갓난 시절을 목격한다는 점에서

반사적으로 옛 곡 '내가 어렸을 적엔'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니까 쿵쿵거리는 베이스 드럼, 선동적인 박수(Clap)를 뼈대 삼고

아프로 리듬으로 흘러가는 인간의 탄생, 인간의 극복, 그 둘을 감싸는 자연의 웅장한 서사가 '해는 동쪽에서 뜨고 비는 하늘에서 내리며,

바람과 구름은 그냥 지나가버리는 것'임을 깨달았던 '내가 어렸을 적엔'의 사연에 자연스레 가닿는 것이다.



이 곡은 스웨덴 출신 프로듀서 겸 송라이터 마르틴 한센과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활동하며 디제이 샘 펠트, 영국 일렉트로닉 팝 듀오 Sondr 등과

작업한 싱어송라이터 조 클리어의 합작품이다. 독일 하드록의 자존심 스콜피온스나 핀란드 록 밴드 라스무스 등과 일한 적이 있는

마르틴 한센은 이 곡에서 장호서와 나누어 한 프로그래밍을 비롯해 모든 악기(기타, 베이스, 만돌린, 키보드)를 홀로 다루며 곡의 일등공신을 자처했다.

마르틴은 곡 전후반에 각각 브레이크를 걸어 건반과 어쿠스틱 기타가 조용필의 목소리를 부각할 수 있도록 했는데,

이 편곡은 매력적인 음색을 가진 조 클리어의 백킹 보컬과 함께 곡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해낸다.



음악이 곧 삶이요 전부라 말해온 조용필은 이처럼 창작 면에선 늘 '지금'을 추구했다. 지난 2005년 8월 평양 공연 때도

그는 수 십 년 전 노래를 불러달라던 현지 관중들의 요구를 따르지 않고 비교적 근작이었던 80년대 이후 곡들을 불렀다.

과거도 중요하지만 조용필의 음악은 늘 현재라는 토양에서 새로 싹텄다. 그리고 새로 돋아난 음악의 현재는 미래의 음악적 다양성을 잉태한다.

즉 트로트와 록을 만나게 한 '돌아와요 부산항에'와 비지스의 영향을 받아 만든 '단발머리'로 시작해 드라마 '수리남'에서

전요환이 즐겨 들은 '꿈'에서 절정에 이른 80~90년대 조용필의 음악적 다양성은 결국 2022년에 이르러 콜드플레이를 펑크에

절인 '찰나'와 세렝게티 저 멀리 보이는 킬리만자로 산 표범으로 은유했던 인간의 극한 고독을 접고 대자연 속 환희를 만끽한 '세렝게티처럼'으로 진화한 셈이다.



조용필이 노래를 만들며 중시하는 건 주제와 리듬이다.

그래야 음악이 오래간다는 이유에서다. 또 그는 '음악이란 자기 마음속에 있는 걸 하는 것이라

노래에 담긴 뜻은 곧 부른 사람의 마음'이라는 지론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조용필은 그 시대에 있어야 할 곡을 내놓는다.

근래 천재(天災)와 인재(人災)가 난무하며 우릴 힘겹게 하는 현실에서 아마도 그는 자신이 일으켜야 할 리듬, 던져야 할 주제를 발견한 것은 아닐지.

나는 수 십 년을 꾸준히 사람과 자연을 소재로 노래해온 그가 화산처럼 첨벙이는 무지갯빛 박동을 포착한 아트워크를 통해 제시한,

가장 소중하지만 자주 잊히곤 하는 인류의 주제를 보았다. 그것은 언젠가 스미스(The Smiths)가 노래한 가사의 일부이기도 했다.


바로 사랑, 평화, 그리고 조화(Love Peace And Harmony)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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